진영한서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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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5-03-19 11:39
제 목
본원 가정의학과 이호중 과장,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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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8일 본 원 가정의학과 이호중 과장님께서 한미약품에서 주관하는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미수필문학상은 2001년 제정된 뒤 24년 동안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기록한 수필을 시상하고 있습니다

 [수상작 전문]

 "아프지 않게 해달라"

 요양병원에서 봉직의사로 일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환자분들과 보호자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의사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타인의 삶과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같이 걸어가는 일인지라 늘 감정적인 소모가 심하다. 의사면허를 딴 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바람에 풍화되듯, 감정이 둔화되고 기계적인 일상에 익숙해져 갈 무렵이었다.

 60대 초반의 여성 환자분이 입원을 하셨다. 요양병원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 오신다. 주로 치매나 만성질환으로 인해 더 이상 환자분을 집이나 요양원에 모시기 힘든 상황이 오면 요양병원의 문을 두드린다. 80대 환자분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나이가 젊으신 분들은 70대다. 60대의 환자분은 극히 드물다.

 이 60대 초반의 여성 환자분은 1년 전 대장암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했으나, 재발을 한 상태다. 암 수술 이후 대학병원에서 정기검사를 하던 중에 복강 내 전이가 발견되었고 그로 인한 장유착, 장폐색 그리고 패혈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로 본원으로 오신 것이다.

 의식 상태는 좋으나 장폐색으로 인해 복부 통증과 팽만이 있고 위장관 배액 중이다. 식사를 못하기 때문에 케모포트를 통해 경정맥 영양을 하는 중이고, 장폐색에 따른 패혈증으로 항생제 치료를 유지 중이다.

 진료의뢰서상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가지는 무게감이 무겁다. 의사라면 저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절망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환자의 보호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이었다. 1년간의 암 수술과 항암치료, 그 이후 이어진 암의 재발. 암은 환자의 생명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보호자들 역시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환자분은 말기암 상태와 장폐색으로 인해 급격한 상태 악화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이상 호전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보전적인 치료를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DNR(심폐소생술 포기)에 동의하시고 …….”

 지친 얼굴의 보호자와 면담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일상적인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이전 병원에서 설명은 다 들었습니다. 아프지만 않게 해주세요, 선생님.”

 주 보호자인 딸이 말했다.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라…….

 인근 대학병원에서 암 치료를 하다가 결국 안 돼서 오는 분들이 간간이 있다. 보호자분들에게 기계적인 설명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환자분들을 보게 되는데, 지병으로 인해 돌아가시는 일은 이 일을 하다 보면 늘 있는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그 말이 낯설지 않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15년 전 나는 지방의 작은 2차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각 과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전공의를 불렀고, 그중 하나가 응급 환자 전원 시에 구급차를 타고 따라가는 일이다. 호흡이 안 되는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 대신 손으로 호흡을 보조하는 앰부백을 짜거나, 심장이 안 좋은 환자의 경우 다른 병원으로 가다가 구급차에서 심실세동이 생길 수 있어 제세동기를 세팅해서 같이 타고 갈 때도 있다. 응급실에서 심장내과나 외과 계열의 콜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아과에서 콜이 왔다. 응급실에서 소아과 과장님의 콜이라니……. 불안한 마음으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생후 1개월 남짓 된 아기였고, 평상시에 여유롭고 사람 좋던 소아과 과장님이 상기된 얼굴로 앰부백을 잡고 있었다.

 “이 선생, 와서 앰부백 좀 잡고 전원 가는 데 따라가야겠다.”

 그렇게 아기의 앰부백을 잡은 채 구급차를 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갔다.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기 엄마와 아기의 외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없이 앰부백을 짰다.

 어른들의 앰부백과 달리 아기들의 앰부백은 조심스럽게 짜야 한다. 너무 세게 압력을 가하면 폐에 무리가 가고, 너무 약하게 짜면 호흡이 안 된다. 부드럽게 내 호흡에 맞춰서 앰부백을 짠다. 내 신경은 온통 앰부백에 가 있었다. 내가 앰부백 짜는 것을 멈추면 아기의 호흡이 멈추는 셈이다. 내 손에 저 작은 아기의 숨결이 달려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은 많은 환자로 혼란스러웠지만, 기도삽관을 한 채로 앰부백을 짜면서 들어오는 소아 환자를 보자마자 의료진이 달려왔다. 누구든 초응급 상황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응급실 소아과 당직 의사가 아기를 확인하고, 간호사에게 라인을 잡으라고 한 뒤 소아 중환자실을 어레인지한다.

 손이 부족하기에 앰부백은 계속 내가 잡고 있었다. 1개월 남짓 된 아기의 혈관은 노련한 응급실 간호사도 잡는 게 쉽지 않은 상태였고, 한참을 라인을 잡으려고 하는 간호사에게 아기 엄마가 말했다.

 “제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손이 부족하기에 아기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은 상태였고, 대학병원에서 수술이 예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갑자기 청색증과 호흡부전으로 우리 병원의 소아과 과장님이 기도삽관을 하고 급하게 보낸 상태였다. 언제 심정지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맥라인 확보는 아기의 통증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후 그 병원 의사 선생님에게 앰부백을 넘기고 다시 병원 구급차를 타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기 엄마가 음료수 한 통을 들고 찾아왔다. 아기 엄마는 내게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아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앰부백을 잡았던 내 손보다 정맥라인을 잡던 간호사의 손이 더 귀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말없이 아기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기 엄마는 울었다.

 오래전의 기억이지만 한 번씩 기억이 났다. 정맥라인을 잡던 간호사의 손도, 울고 있던 아기 엄마의 얼굴도, 세월에 마모되어 희미해졌다.

 단지……, 아프지 않게 해달라던 아기 엄마의 목소리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

 병원은 아파서 오는 곳임에도, 저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오랜 병치레로 지쳐 보이는 딸을 향해 말했다.

 “보호자분, 이렇게 말기암으로 오시는 환자분들이 많습니다. 암으로 인해 환자분의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통증 조절은 제가 경험이 많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버해서 이야기했나 싶어서 살짝 후회가 되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수상소감]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병원의 응급실과 수술실에서는 생사를 오고가는 이들을 위해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가장 절박한 순간을 함께 하는 그들의 위대함과 숭고한 희생에 대한 존경심을 늘 가지고 살아갑  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고 그들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그 일 역시도 의사가 해야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요양병원에 봉직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그들의 마지막이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병원은 의사 혼자 일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과 직원들, 간병인 분들, 원무과 직원들, 물리치  료실 직원들,조리실의 이모님들 모두가 자기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기에 환자분들을 케어하고 치료 할 수 있는거 같습니다. 한서재활요양병원에서 같이 동고동락 했던 많은 직원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늘 존경하는 병원장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주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아이 승현이 세현이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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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의료재단'' 사회복지법인 조은